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秀필

이 노래를 듣는 날이면

 

 

그 사람

아이유(IU)

 

 

 1.

 이 노래를 듣게 되는 날이면, 어김없이 그 애가 떠오른다. 아니 어쩌면, 그 애가 떠오르는 날 이 노래를 찾게 되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. 시간에 속아 지나온 삶 어딘가에 깊숙이 묻어두었던 기억 속 나의 그 애를 내 옆에 두고선, 오래오래 이 노래를 함께 듣는다. 녀석을 향한 그리움과 녀석 없이 지냈던 나날들에 섞인 외로움이 본연의 색을 띠기 직전, 너무 슬프지도, 너무 아프지도 않은 딱 그때까지만.

 

 어느 계절, 어느 시간대에 이 노래를 듣던 간에 결국 나는 그날의 새벽으로 돌아가곤 한다. 가능성을 외면한 채 두려움을 따라 미래로 내달린 자의 발목엔 늘 미련이라는 족쇄가 채워져 있기 마련이니까.

 

 그래. 그러니까, 그날을 헤쳐 온 나는, 미련을 짊어지고 다시 그곳으로 나를 뉘인다. 그때처럼 그 애가 나를 안아주었으면 해서. 나보다 아주 조금 더 키가 컸던 그 애의 품에 안겨 바라본 밤하늘과 가로등 불빛을 다시 한번 눈에 담고 싶어서. 무엇보다도, 못다 한 말을 하고 싶기도 해서.

 

 그렇지만 그때처럼 나와 그 애는, 우리는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는다. 우리에겐 같은 동네에 산다는 것 말고는 애초에 접점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. 그냥 계속해서 노래를 듣는다. 몇 번이고 반복해도 질리기는커녕 할 수만 있다면 계속 붙잡고 싶은 오래된 습관이었다. 

 

 그리고 여전히, 우리의 시선은 서로 다른 곳을 향해 있다. 내가 아직도 너를 매일 마음에 담고 사는 것도 아니고 영원히 너만 그리며 살 것도 아닌데 저 사실이 나에게 다가올 때면 자꾸만 숨이 막히고 괜히 눈가가 뜨거워지면서 이내 상흔을 담은 채 벌게지고야 만다. 시간이 지나도 맞닿을 기미가 보이지 않고 때를 놓친 나의 스무 살, 그 첫사랑의 말로는 정말이지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게 막을 내렸지만 커튼을 젖히면 언제든지 재빠르게 진행이 되어버린다.

 

 시간이 흘러 기억은 퇴보하고 흐려지는 잔상의 길로 접어들었지만, 그 어떤 추억보다도 짙고 깊은 그 날의 온도와 밤공기, 주황빛 가로등이 자아내는 알 수 없는 분위기는 여전히 감정으로 스며들어있다. 

 


2.

 그러나 과거에 머물고 싶어 발악하는 현재의 태도는 영 유쾌하지 못해서 오랜시간 몸 담지는 않는다. 별다른 인사도 없이, 그날처럼 나는 등을 돌린 채 떠난다. 전하고 싶었던 말을 꾹꾹 마음속에 눌러 담아, 어딘가로 새어나가지도 못하게 목에 힘을 주고서.

 

 몇 해의 시간이 흐른 지금, 이제야 나도 조금은 성숙의 길로 접어들고 생각의 끈이 길어져서 그때는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 헤매기만 했던 나의 진심섞인 물음표를 온전한 점 하나로 마무리하고자 한다.

 

 S야. 낯가림이 심한 나는, 처음보는 사람들을 살갑게 대하면서 편안하게 만들 줄 아는 너를,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너의 옷차림새를 동경했어. 그리고 같은 시기에 너에게도 너무 애틋하고 불안해서 감히 입에 담기에도 어려운 이름 세 글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땐, 너를 동정했어. 어느 곳에서든 꼬박꼬박 맞춤법을 지키는 자세와, 어느 정도 눈치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 곳만 바라보던 너의 태도를 존경했어. 그리고 지금은 이 모든 게 나쁘지 않은 꽤 괜찮은 추억이 되었어.

 

그리고 석아, 요즘의 너는 어떤 사람과 어떤 춤을 추며 이름부터 찬란한 이십 대의 터널을 어떻게 지나고 있니. 여전히 너만의 개성으로 물들이고 있니. 끝으로, 깊게 패인 네 보조개의 안부를 물으며 나는 다시 길을 나설 거야. 다신 만나지 말자던가, 우연히 마주쳐도 인사하지 말자던가, 이제는 더 이상 너를 떠올리지 않겠다는 그런 류의 독하고 단단한 약속은 못해. 지킬 자신이 없거든. 딱히 너를 지우려고 노력하지도, 기억하려고 애쓰지도 않을 거야. 그러니 부디 잘 흘러가길 바라. 나의 기억에서 네가, 그리고 네 삶이.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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